로자 팍스 요즘이야기

10월 24일은 로자 팍스 여사의 기일입니다. 작년에 92세로 세상을 떠나셨다지요. 이 분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책꽂이로 가서 책을 한번 찾아볼까요? (사진-한국 SGI 2005년 평화문화활동 패널 사진에서 오렸습니다.)



1955년 12월 1일 목요일,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하는 늦은 오후, 추운 날씨였다. 차림새가 말끔하고 안경을 낀 한 여인이 피곤한 몰골로 시내버스에 올라탔다. 나이 마흔두 살에 몸매 단정하고 몸가짐이 공손한 재봉사로, 도심 번화가의 한 백화점 양복점에서 하루 일을 마친 뒤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버스 안은 이미 만원을 이루고 있었지만, 그녀는 중간 가까이 통로 쪽 좌석에 지친 몸을 앉혔다. 곁에는 다른 흑인 승객 세 명이 자리 잡고 있었고, 바로 앞줄까지는 시의 인종분리 법규에 따라 백인 전용으로 지정된 좌석들이었다. 이 백인 전용칸의 빈자리들도 한두 정거장 지나는 사이 순식간에 들어차는 바람에 세번째 정류장에서 한 백인 남자가 올라탔을 때는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에, 좋아. 어이 당신들, 그 자리 비켜줘야겠어." 버스 운전사가 고개를 돌려 파크스 부인과 그 곁에 앉은 세 흑인에게 대뜸 내민 요구였다. 강요에 가까운 명령조였다. 다른 흑인 셋 다 순순히 일어나 좌석을 비우고 버스 뒤쪽으로 자리를 옮겨 섰다. 그러나 파크스 부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또다시 운전사가 백인 승객에게 자리를 내주라고 다그쳤다. 이윽고 그녀가 대꾸했다. "노." 나직하고 간단한 한마디였다. 단지 힘들고 고되었던 하루 일과 때문만은 아니었다. 별안간 지난 세월 몽고메리에서 흑인으로 살아오는 동안 쌓이고 쌓인 멸시, 천대, 모욕의 응어리가 한꺼번에 터져나온 것이었다.

그 "노"라는 한마디……. 그런 다음 파크스 부인은 체포되었다. 그리고나서 몽고메리의 흑인 시민 사이에 시의 인종분리 버스 운영 체제를 배격하자는 결의가 자발적으로 용솟음쳤다. 그야말로 삽시간의 자연 발화였다.

- 출처: 마셜 프래디, '마틴 루터 킹'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이후 진행된 흑인 운동에서, 잠시의 망설임 후에 뛰어들어가 진두지휘하게 됩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만든 다양한 계기 중 하나가 이 버스 승차 거부운동이었다는군요.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인종격리정책이 사실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알리고 바꾸어나갈 수 있던 운동이었죠. 그러고보면 우리도 가끔은, 알콜 램프 위에 올려진 비커 속에서 사우나 하는 개구리처럼 그냥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왠지모를 초조함.이 밀려오네요. 나의 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어떤 역사를 보여줄 수 있을까.

이후의 이야기를 뉴스에서 찾아보았습니다.

팍스 씨의 체포는 381일에 걸친 흑인들의 버스 승차 거부라는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촉발시켰다. 연방 대법원은 1956년 11월 13일 버스에서의 흑백 분리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팍스 씨의 손을 들어 주었다.

당시 흑인들의 비폭력 저항운동을 주도한 사람이 26세의 마틴 루서 킹 목사였다. 킹 목사는 이 사건을 계기로 인종차별 철폐와 민권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해 민권운동 지도자로 떠올랐다. 킹 목사가 주도한 민권운동은 1963년 민권법 제정으로 결실을 보았다.

1913년 앨라배마 주 터스키지에서 목수 아버지와 교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팍스 씨는 가정형편 때문에 21세에야 고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그는 승차 거부 사건으로 유명해졌지만 몽고메리에서 더는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었다. 1957년 디트로이트로 이주해 재봉사로 일하던 그는 1965년 존 코니어스 연방 하원의원의 디트로이트 사무실에서 1988년까지 근무하다 은퇴했다. - 타계를 보도하며 올라온 기사. 동아일보, 2005-10-26


인종차별이나 인종격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일이지만, 무언가 법적인 결실로 나타나는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는거군요. 왠지 발이 동동. 굴러집니다.

로사 팍스의 순간들’이라는 말을 쓴 사람은 넬슨 만델라였다. 천안문광장에서 탱크에 맞서 자유를 외쳤던 중국청년을 비롯해 전 세계 곳곳에서 불의에 맞서는 모든 저항을 그는 ‘로자 팍스의 순간들’이라고 표현했다. 양심이 부를 때 두려워하지 않고 행하는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팍스처럼 인류의 역사를 바꾸는 불꽃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 24일 92세로 타계한 팍스여사는 늘 이렇게 말했다. “그때 내가 원했던 것은 자유였습니다. 나 자신 뿐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자유롭기를 원했던 것이지요…” 그 ‘모든 인간’에는 미국에 뒤늦게 옮겨와서도 별 차별 받지않고 같은 혜택을 누리며 사는 우리들도 포함되어있다. 최고의 명예와 존경을 받았지만 집한채 갖지 못한채 늘 가난했던 그녀의 일생에 경의를 표하며 그녀에게 진 빚을 갚기위해 우린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 출처: '로자 팍스가 남긴 것', 한국일보 2005-10-27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일화가 실려있다고 합니다. 인권에 대해, 그리고 "No"라고 말하는 법에 대해 소중한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사님. ^^

덧글

  • 행인1 2006/10/24 22:28 # 답글

    작년까지 살아계셨군요...
  • incipit 2006/10/25 12:57 # 답글

    중고등학교 내내 지겹도록 들어야 했던 분이라 [제발 좀 그만해!]라고 외치고 싶을때도 있었건만.^^;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분이 사라졌다니 기분이 참 묘하군요.
    남은 자들이 그 유지를 잘 받들어야 할텐데 말이지요. ^^;
  • 나의르미 2006/10/25 16:44 # 답글

    행인1님// 저도 미쳐 몰랐는데 듣기 지문에서!!

    incipit님// 앙. 전 학교다닐 때 들었던 기억이 없어요. 너무 집중을 안해서 그런지;
  • 야미 2006/10/26 00:49 # 답글

    내가 약자인 상황에서 나와,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거부를 말할 수 있을지..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글이네요
  • 나의르미 2006/10/26 11:02 # 답글

    야미님// 앗 그렇게 생각하면 더욱 의미가 커지는군요~!
  • 로자 파크스 2014/04/08 22:22 # 삭제 답글

    시간이 많이지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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