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 학교에서

나흘만에 학교 온 녀석, 1교시 끝난 시간에 와서는 2교시 들어가기 싫다고 해서 상담실에 갔더니 상담 선생님은 스케쥴이 꽉찼다고 하셨다. 하루 이틀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스케쥴이셨다. 상담 선생님이 사탕줄까? 젤리줄까? 하시는데 애가 도리도리. 선생님들이 모두 수업 or 상담 가신 후, 마주앉아 내가 물었다.

"커피?"

끄덕끄덕.

어렸을 때, 아버지한테 말 안들으면 많이 맞았다고 하길래, "그게 말이지. 말이 잘 안 나오면 몸으로 보이게 되는 것 같아. 너도 학교 오기 싫은 마음을 말로 못하고 그냥 안오는걸로 보여주잖아. 중간이 없이... 아버지도 그러셨을거야. 아버지들은 말씀하시는데 서툴러." 라고 했더니, "그래도 고등학교 와서는 안 때렸어요."라고 한다.

"너도 많이 컸으니까. 그러니 좀 어른스럽게 행동해봐. 나한테도 학교오기 싫은걸 말로 해보면 되잖아. 그럼 내가 왜 그런지 물어보기도 하고 혼내기도 하고 그렇겠지. 그러면서 사는거야. 힘들면 버티고 즐거우면 좋아하고 그렇게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졸업도 하고 네가 할 수 있는 일들도 많아질거야."

녀석은, 방통고는 어떤지, 자퇴를 하면 어떻게 되는지 이것저것 물었지만 나는 대답해 줄 것이 별로 없었다. "내가 오늘 방통고나 자퇴에 대해서 조사해서 네가 원하는 정보를 알려줄테니까 너도 오늘 하루 수업 시간에 잘 듣자. 너랑 나랑 똑같이 숙제 하나씩 하는거야."라고 말하고 교실로 보냈다. 함께 올해 잘 마무리 하면 좋을텐데 라는 나의 소망은 그대로 간직한 채, 알고 싶다는 것은 다 알려주어야지. 모두가 그렇지만, 오랫동안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돌아가는 세상에 얼마나 많이 실망했을까, 이 아이는.

봉사활동 시간에 친구들이랑 투닥거리며 잘 놀고 있는 애를 보니 좋았다. 산에 수색하러 가는 봉사활동이었는데 구두 신고 올라가느라 힘들었다. 고인 웅덩이에서 다른 애 하나가 도롱뇽을 잡았길래 같이 구경하고 우르르 학교로 내려왔다. 애들은... 귀엽다. 그리고 젊은 선생님을 더 좋아하더라는 것도 오늘 처음 깨달았다(그러게, 지금까지는 늘 내가 막내였는데. 췟췟. 이 학교에는 나보다 어린 선생님이 두 분 계시고, 애들은 늘 그 분들에 대한 질문을 나에게 해댄다).

4시 50분에 하기로 한 간단한 회의가 살짝 미뤄지고 있어서, 교직원들이 모두 모이는 분위기인데 살짝 나와서 종례하러 갔다. "지금 교무실에서 회의중인데 몰래 빠져나왔어요." "왜요?" "얼른 종례하고 여러분들 보내려구요." "와~ 좋아요." "청소도 잘 했네? 내일은 집에 가는 날이니까 오늘 가서 푹 자고 아침에 정리정돈 잘하고 오세요." "네~" "내가 할 말은 다 했어요. 나한테 할 말 있니?" "아니요~" "그럼 인사하자."

근데, 녀석은 자리에 없었다. 봉사활동 마치고 수업 들어가는 찰나에 옆 반 친구랑 나갔단다. 문자를 보내니 "죄송합니다ㅜ"라고 보내왔길래, "내일 늦지말고 와."라고 답문 보냈다. 이 아이에게 어떻게 할 것이냐는 다양한 의견과 조언을 수집하고 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옵션들이 내 앞에 있다. 무엇을 선택하든, 아이가 원하는 것과 아이가 훗날 아쉬워할 것을 잘 보고 잘 보여줄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할텐데.

덧글

  • 덧말제이 2007/03/23 06:05 # 답글

    좋은 선생님이신 거 같아요.
    어디나 마찬가지인 듯. 그곳이 초등학교든 대학교든 좋은 선생님은 학생과 같은 눈높이를 '만들' 수 있는 선생님인 거 같아요.
  • 응아보이 2007/03/24 00:33 # 답글

    생각과 마음가짐이 100점을 넘어섭니다.
    그러니, 조금은 부족한 행동을 하더라도 충분히 100점이예요.
    멋진 선생님.. ^-^
  • greenmovie 2007/03/24 00:41 # 답글

    아잉.. 이렇게 맘 고생 시키다니...
    데려다 패버릴까부다..ㅠ.ㅠ
  • 앨범이 2007/03/25 03:20 # 답글

    부럽습니다~ 힘내세요~
  • 악생소녀 2007/03/26 23:30 # 답글

    와. 마음이 다 따뜻해지는 느낌이네요. 지지말고 화이팅입니다! :)
  • 반동분자 2007/03/26 23:35 # 답글

    주변에 자퇴한 친구들로 보건데, 자퇴가 꼭나쁜건 아닙니다. 다만 힘든길이에요.

    도피처로 자퇴를 택한다는 생각이 드시면 꼭 말려주시길.
  • RocknCloud 2007/03/27 23:27 # 답글

    저희 아버님도 선생님이셨지요.
    윗분처럼 자퇴가 꼭 나쁜건 아니라는데 동감합니다.
  • passion 2007/04/05 11:56 # 답글

    종례 일찍해주는 선생님 좋아요 ^^
  • 나의르미 2007/04/21 15:28 # 답글

    덧말제이님// 대학이라면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고등학교는... 생활에 대한 잔소리를 많이 해야 해서 걱정입니다.

    응아보이님// 행동이 부족해서 마음이 작아지니 문제입니다. 흑.흑.

    greenmovie님// 허허허. 만나면 무서울텐데~

    앨범이님// 무엇이 부러우십니까. 흑. 전 녀석 꼬드기느라 힘듭니다.

    악생소녀님// 화이팅!

    반동분자님// 힘든 일인걸 알기에 말리는거죠... 선택은 녀석의 몫이겠지만...

    RocknCloud님// 저도 그건 동감입니다.

    passion님// 나름 종례 일찍 마치려고 노력하는데 잘 안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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