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군 학교에서

뇌수술을 했다는 학생이 하나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학습력을 가진, 그래서 영어를 공부하기는 조금 힘든 아이다. 항상 영어를 듣고 말하면 잘 하게 되겠지만 고등학교 수업은 어휘를 익히고 이야기를 읽고 듣기 평가를 하고 그렇게 이루어지니까... 특수학습 선생님이 있다면 좋았을텐데 고등학교에는 드문 일이라 그냥 수업을 듣는 T군. 자리도 맨 앞이라 칠판에 적어놓은 것을 열심히 받아적는데, 글자가 커서 학습지에 쓸 공간이 모자라곤 한다. 그럼 뒷면에 열심히 또 적는다.

"내가 큰 종이에 줄까?"

라고 했더니 괜찮단다. "네!"라고 하면 B4에 확대복사해서 주려고 했는데...;; 

이 아이는 사실 굉장히 훌륭하다. 생활습관이 잘 잡혀 있는 아이다. 나는 가끔 나보다 훨씬 더 괜찮은 아이라는 생각을 한다. 인사하는 것이나 식사 후 정리정돈 하는 것이나 책가방을 챙기는 일이나... 나보다 더 잘 씻을테고, 나보다 더 일찍 일어날 것 같다. 같은 반 애들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잘 지낸다.

이 학생은 학교의 모든 선생님 이름을 외우며 말을 먼저 걸어온다.

"안녕하세요~"

선생님들이 서너분 같이 걸어가는 것을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다 호명하면서 인사하는 T군. 그리고는 한마디씩 덧붙인다. 안경을 쓰지 않고 렌즈를 끼고 온 선생님을 보고는 "안경 잃어버렸죠?"라고, 내가 처음 보는 남방을 입고 간 날에는 "오늘 어디 가요?"라고.

물론, 원피스를 입고 학교에 온 선생님을 보면 "선생님 임신했어요?"라고도 묻는다.
그래서 나는 원피스를 입고 학교에 가지 않는다. ㅡ.ㅡa

그리고 사알짝, 여교사를 더 좋아한다. ^^;;(왜 웃는거냐, 르미)

암튼, 귀여운 녀석. 부지런하고 씩씩해서 무엇인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한다면 잘 할 것 같은 녀석.
인사 반갑게 받아주어야지. 까칠한 요즘이지만 나도 활기차게 인사해야지. 

덧글

  • Mc뭉 2007/05/11 21:07 # 답글

    학생은 역시 학생다워야하는...히힛...
  • greenmovie 2007/05/11 23:39 # 답글

    T군 같은 친구들.. 자칭타칭 학교내부의 장학사이자 카나리아라고 생각해요. 카나리아는 정말 깨끗한 공기 상태에서만 살 수 있대요.(어디서 줏어 들었는데 맞으려나...) 그래서 카나리아는 자연산 공해 측정기 같은거라던데.. T군들이 잘 지낼 수 있게 조금씩 움직여서 맑은 바람을 만들어 보자구요~! 르미 파이팅~! 나도...
  • passion 2007/05/12 02:27 # 답글

    ㅎㅎ 재밌는 아이네요. 원피스 빼고는. 그것두 어떻게 말하는게 올바른거라구 가르쳐주면 잘 하지 않을까요?
  • 덧말제이 2007/05/12 07:36 # 답글

    맑은 아이네요. :)
  • 玄雨 2007/05/12 09:28 # 답글

    원피스의 굴욕이군요-_-;;
  • 파김치 2007/05/13 18:09 # 답글

    원피스는 웃기지만, 나머지는 다 귀엽네요. 인사성도 밝고 생활습관이 잘 잡혀있다니 성실한 학생인 것 같아요.
  • sesyo 2007/05/14 22:53 # 답글

    T군 화이팅! 르미선생님도 화이팅! ^^
  • 나의르미 2007/05/16 22:07 # 답글

    Mc뭉님// ^^;

    greenmovie님// 와. 멋지다. 장학사라는 말은 정말 맞아요;

    passion님// 음. "그렇게 얘기하지 말고 이렇게 해야지."라고 하면 안들린다 모드로;;

    덧말제이님// 맑디 맑아서 가끔은 제가 부끄러워요.

    玄雨님// 정말...굴욕이지 말입니다.

    파김치님// 성실해요!

    sesyo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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