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다 학교에서

교사라고 하면 가르치는 직업이라고 흔히들 생각하겠지만 사실 학생들을 대하는 서비스업이라는 생각이 든다(그래서 육체노동이다). 교사관에는 전문직관과 성직자관과 노동자관이 있다고 하지만 개개인마다 그 생각은 다른데, 내 생각은 그렇다. 서비스업이다. 난 그래서 동료 교사에게 잘하는 선생님 축에 끼지 못한다. 아이들에게는 친절하지만 그 친절을 다른 선생님들께까지 보내지를 못한다. 행정실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왜 말투가 그렇게 딱딱하냐?" "왜 웃지 않느냐?" "왜 행정실에 놀러오지 않느냐?" 라고 물으면, 나는 고민스럽다. 나의 고객은 학생들이지 당신들이 아닌데. 당신들이 학생들을 마구 대하면 - 특히나, 책걸상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는 아이들에게 왜 그걸 묻냐고 귀찮아하는 시설 관리하는 분들에게는 - 나는 화가 난단 말이다. 당신들은 업무 중에 귀찮은 질문 하나 받은 것이지만 나는 녀석의 의자가 부서져서 얼마다 앉아 있기 힘든지를 보고 알기 때문에. 사무보조 시켜서 과일을 깎아놓고, 먹으러 오라고 교무실 여선생님들을 불러 모을 시간에 학생들에게 서비스나 제대로 했으면 좋겠단 말이다...

올해 담임을 맡으면서, 어떻게 하면 서비스를 잘 할 수 있을지 고민한 덕분에 우리반은 오늘도 전원 출석 - 양 쪽 반에 무단결석이 계속 있는 것에 비하면 아주 훌륭한 - 이었다. 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짧게, 지루하지 않게, 그리고 그러면서도 놀랍게.

예를 들어, "결손가정 조사서"를 학생과에서 내 달라고 한 어제, 나의 종례는 이렇다.

"내가 고등학교 때 엄마와 단 둘이 살았어요. 근데 호적상 나는 아빠 밑에 있었죠. 어쨌든 나는 편부모 가정에 살았어요. 그런데 그 때는 아무런 복지 해택도 없었지. 지금은 집이 없고 편부모 가정이라면 수학여행비나 학비를 보조받을 수 있데요. 학생과에서 조사해달라고 하셔서, 나는 일단 여러분이 낸 호적등본을 토대로 조사서를 썼으니 혹시 실제로 같이 사는 사람들과 호적이 다른 학생은 와서 이야기를 해 주세요. 창피하거나 불편한게 아니라 어떻게 부모님을 조금 더 도울 수 있을까 하는 거니까 그냥 지나치지 말고."

이러면 학생들은 이야기를 잘 듣고, 나에게 찾아와서 "동사무소에서 집이 있다고 보조를 못해준데요."라고, "새아버지와 잘 지내요. 지난주에 오일장 갔었어요."라는 등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이다.

오늘은, 종례 중에 한 여학생이 창문 너머로 전화기를 주고 갔고, 그 전화기 주인은 다른 학생의 전화기를 무단으로 며칠이나 빌려가서 사용한 학생이었다. 전화기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건 단지, 종례 시간에 무분별하게 다른 학급의 학생이 왔다 간 것과, 집중하지 않고 있음을 훈계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녀석이 내 손에 있는 전화기를 낚아채더니, "선생님이 달라고 한데서 다 줄 필요는 없잖아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실, 녀석은 술도 많이 마시고, 동네에서 오토바이도 훔쳐 타고, 돈 있으면 나가서 놀고 놀다보니 차비 없어서 학교 못오고, 전화기도 함부로 사용해서 요금을 내지 못해 끊겼고, 문 닫은 시장 상가를 털었다가 파출소에 잡혀가서 재학증명서도 여러번 팩스로 내가 경찰서에 보냈던 녀석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지금 한 행동이 더 나쁘다.

문제는, 아무도 그게 왜 무례한지 설명해주지 않았으리라는 것. 지금까지 10년째 학교 생활의 와중에 그런 것에 대해 차근차근 들어본 적이 없는 애였을거라는 생각이 스치는 것이다. ...왜 나쁜 행동인지 차근차근 설명해주는데 점점 화가 나기 시작하더니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아, 이래서 100대씩 때리는 교사가 있고 의자를 던지는 교사가 있고 뺨을 때리는 교사가 있구나 싶었다. 

게다가, 녀석이 계속 "뭐가 잘못이에요."라고 말하는 바람에 설명이 엄청 길어졌다. 

1. 종례는 우리 학급의 시간이고, 2. 여학생이 들락날락 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 우리반의 룰이고, 3. ......

하나 하나 이유를 얘기하면서 중간 중간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나쁜 말을 유창하게 섞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섞였다. OTL. 애들 정말 숨도 안쉬고 듣고 있었다. 존대말 수업을 하는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처음 보았을게다. "그정도 욕이야 늘상 애들도 하는데."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모든 인간은 만나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나름대로의 잣대를 두고 있다.

2주일간 무단 결석한 그 녀석을 학생과에 넘기지 않고 내가 그냥 처리했던 일, 할머니가 찾아와 눈물을 글썽이면서 애가 왜 그렇게 엇나가는지 모르겠다며, 자기 자식이면 때리기라도 하지 손자이니 때릴 수도 없다고 말한 일, 하루에 두세시간이 채 안되는 업무 시간의 대부분을 녀석의 재학증명서 경찰서에 보내느라 행정실을 들락날락 하는데 썼던 며칠, 이런 것들이 생각나서 화가 가라앉지를 않는 것이다.

교무실에 오니 우리반 애들 몇 명이 외출증 받으러 왔다가, "그애는... 심성만 고와요."라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내가 애들 잘 키우긴 했네, 말을 얼마나 잘 하는지. 애들끼리 서로 아끼는 분위기도 충만해보이고.

아, 근데 정말 속 뒤집어진다. 심호흡하고,

"심성 고운거 알아. 우리반에 나쁜 애 한 명도 없어."

"내가 속상한 건 뭔지 알아? 그 행동은 잘못되었고 나는 혼을 내야 하는데 종례 시간이여서 착하게 열심히 생활하는 다른 아이들까지 내가 하는 훈계나 욕을 고스란히 나눠 듣는거야. 오늘 그 애도 나도 잘못했어. 심히 좌절스러워."

애들은 끄덕끄덕. 하더니 돌아갔다.

어렵다. 서비스는 어려워. ㅡ.ㅡa


덧글

  • 홍당무 2007/05/31 22:01 # 답글

    오늘도 르미님 회사 옆 회사(난대...)에 갔다가 양선생님 생각했었죠. 어우 빨리 만나서 밥 먹어야 되는데.
    정치까지는 필요없겠지만 내부고객에게도 웬만큼은 하세요. 화이팅. :)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