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학교에서

월요일 윤리시간이 끝나자 네 명의 학생이 줄줄줄 교무실로 들어왔다. 윤리 선생님은 나에게 "학생과에 가려고 합니다. 괜찮겠습니까?"라고 물으시고는 애들을 데리고 내 자리 반대편 학생부로 가셨다. 이틀 동안 나는 그 일에 대해 학생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오늘 아침에 그 중 한 명을 불러 자초지종을 들었다.

상담 선생님이 그 애와 상담을 시작했다고 말씀하시기에 공강 시간에 찾아갔다. 사실 나는 상담 받는 것을 정말 좋아해서, "저도 심리검사 해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놀랍게도 내가 담임인 바람에(매일 놀라고 있음) 조금은 어른스럽게 이야기를 들었다. 상담 내용은 비공개라서 상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기보다는 얼마나 더 상담을 하게 될지, 얼마나 마음이 통했는지를 듣는 자리였다.

그리고 심리검사는 아니지만 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무조건 학생의 첫 말을 수용하는 전략으로 바보같지만 부드럽게 말하려고 노력했던 것을, 그래서 수업을 째고 빈 교실에서 이성친구와 노닥거리는 '현장'을 하필 내가 발견한 '죄'로 그 애들을 때리고 집에 가면서 울었던 일을, 몇 달이 지나 문득 어떤 애가 수업 도중에 나에게 참 불쌍하다고 말했던 일을, 그럼에도 영어를 따로 공부하고 싶다고 찾아오는 애가 있어서 기분 좋더라는 이야기를.

그래서 결심과 달리 결국 상담한 셈. ㅡ.ㅡa

상담 선생님은 수업을 하신 지 오래된 전문 상담교사다. 애들이 나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서 다른 선생님들께 그런 수용적인 반응이 나오지 않는다고 더 쉽게 반항하고, 선생님들도 학생들이 말이 많다고 싫어하는 이 상황에 담임으로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나 하는 내 고민에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교육이 학생들을 변화시킬 수 있으려면 먼저 개성을 꽃피우는 것이 맞습니다. 선생님이 올바른겁니다.

내가 상담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렇게 과찬을 해 주셔서 기분은 좋았다. 그러나 상담 선생님도 말씀하신 것처럼... 어떤 선생님들은 80년대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분명 그 분들이 해주시는 값진 일들도 많을 것이다.

나는 아직은. 이라고 해야겠다. 나는 아직은 머리가 길고 염색한 학생들을 노려볼 순 있지만 머리를 정리하라고 차마 말을 못하겠다. 그게 엄청나게 큰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 아주 사소하기도 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은 "휴대전화를 담으세요. 보이면 가지고 갈겁니다."라고 말하면 "제 전화기인데 왜 가져가겠다고 해요?"라고 소리치고는 내 반응을 궁금해하는 애에게 버럭 화를 내기가 싫다. 바보처럼 그 말이 정말 말 그대로 질문인 것처럼 "왜냐하면 소유는 너의 것이 분명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꺼낼 시간과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야."라고 한번만 더 참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그렇기 때문에 그 애들이 다른 선생님에게 똑같이 반응하고 반항하고 그러다 맞고 욕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서 영어샘은 안그러는데 선생님은 왜 그러냐고 항의해서 나를 매우 곤란하게 만들곤 하지만... 어쩌란 말이냐.

어쩜 개성 강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개성 강한 교사가 되어버린걸까. 나에게 한 마디도 않으시는 윤리 선생님 시선에 뒤통수가 따갑지만 어쩔 수 없다. 나의 '자신과의 싸움'을 자기들의 편의를 위해 사용하는 학생들에 화가 나지만 어쩔 수 없다. 학생들 한 명 한 명은 보석처럼 소중하다. 그들을 모아놓으니 쓰레기장이 되었다고 해도 학생들이 보석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생각만 많고 점점 말을 짧아지는 나. 오늘의 종례는, 칠판에 "개성"이라고 적어놓고는, "여러분이 각자 개성이 있는 것처럼 선생님들도 그렇습니다. 각자의 개성을 존중해주세요." 라고 하고 나왔다.

...칠판에 글을 다 쓰고 내가 막 입을 열려는 순간, S군이 "개성공단?" 이라고 해서 웃음 참느라 혼났다. 어쩌니, 내가 너보다 뉴스에 관심이 없었나부다.

덧글

  • 스칼렛 2007/11/22 06:05 # 답글

    유머감각이 있는 녀석이군요.(....)
  • greenmovie 2007/11/22 09:17 # 답글

    때려주고 싶다가도 순간순간 보이는 그 번뜩임의 가능성 때문에 결국 또 듣고, 듣고... 지금 모든 것이 결정났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지? 르미가 가진 그 듣는 재주, 들어주는 마음. 한 번 더 듣는 그 마음이 모여서 아이들에게는 소중하고도 귀한 고등학교 기억의 한 부분을 형성할꺼라고 믿어. 르미같은 선생님이 어디 흔하겠냐구~ (아마도 각 학교마다 한 명?- 마스코트???) 파이팅!!
  • 나의르미 2007/11/23 19:57 # 답글

    스칼렛님// 정말 재미있는 아이에요. ^^

    greenmovie님// 그런 생각은 없으니 아직은 괜찮아요. 마스코트라니 그건 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