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어지럽히는 애 옛날이야기

오늘은 간만에 데이트가 없는 쉬는 토요일. 기분이 좋지 않은 르미는 마구마구 화를 냈지만 - 이유: 심심해 - N군은 집안을 뽀득뽀득 청소하셨다는데...

오후에 걸려온 항의전화 한 통.

N군: 지난번에 놀러 왔을 때 집안 어지럽히는 애 놓고 갔지?
르미: 걔 거기 가 있어요? 어쩐지 요즘 우리집이 좀 단정하더라니...
N군: 얘 다시 데리고 가~
르미: 내가 데리고 가려고 한 건 아니구요. 아마 코트 밑에 붙어서 거기까지 갔나봐요.
N군: 내 등 뒤에 붙어서 치우면 어지럽히고 치우면 어지럽히고 있어. 방 걸레질 했는데 뒤돌아보면 또 머리카락이 있고.

뒹굴뒹굴(..) N군 재밌다.

뭐 아무튼, 문득 자취 처음 했을 때의 일이 생각났다. 나의 머리가 아닌 마음은, 어딘가에 아주 조그마한 사람들이 작은 미니어쳐 마을에서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또 가끔은 내가 너무너무 작아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하곤 한다. 사람들 발에 밟히지 않으려면 조심해야지. 몸이 작아지면 목소리도 작아질텐데 어떻게 도움을 청하지. 잘 안보일테니 안전한 곳까지 가는 동선을 생각해보자. 이런 식이다. 모든 일을 이렇게 엉뚱하고 뭔가 말할 수 없는 그런 논리와는 거리가 먼 쪽으로 받아들이는 편.
 
자취한지 며칠 되지 않았을 무렵, 나는 떡볶이를 만들어먹고는 조금 남긴 채 일하러 나갔다. 다녀와서 문을 드르륵 열었을 때, 부엌 가스렌지 위에는 남은 떡볶이가 있었다. 설거지 통에는 씻어야 하는 그릇이 한가득.

- 어? 아무도 이걸 안치웠네?

솔직히 말해서 이게 내 생각이었다. 그리고는 신발을 벗으며, 자취라는 것은 내가 해 놓은 모습 그대로 집이 나를 기다리는 것이란걸 깨달았다.

...나한테는 나름 중요한 깨달음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이런 면에는, 집안일에 완벽하고 "네가 나 안건드리면 나도 너 안건든다. 필요에 따라 협력할 수 있겠지만 우린 남남이다."라는 주의의 엄마의 영향이 좀 있다.)

그리고 그 시기가 지나면 이상하게도 "집이 스스로 어질러놓는" 시기가 다가오는데, 분명 나는 별로 한 것이 없건만 - 요리라든가, 옷을 죄다 꺼내 입어보고는 대충 걸쳐놓고 나가는 거라든가 - 집에 오면 집이 어질러져 있다. 나는 어느날 참지 못하고 버럭. 방바닥에 대고 화를 내다가, 도대체 뭐가 문제냐며 녀석을 마구 구석으로 몰아부쳤다.

그리고 그 구석에서, '고작 한 장' 이었던 연극 티켓을, '작은' 귤 하나를, '아주 얇은' 책 한 권을, 휴지를, 누가 준 폼클렌져를, 지난주에 온 신문을, 연수가서 받은 연수자료집을 찾았다. 나를 매일 이것들을 방바닥에 턱. 놓아두고 있었던 것이다.

이걸 아는데 3년이 걸렸으니 나도 참 대단하다.

암튼, 그래서 결론이 무엇이냐면...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들고 들어간 비닐봉지와 내가 들고 나오는 쓰레기봉투의 부피를 가늠하여 "요즘 이상하게 내가 너무 많이 들고 들어가고 있어."라는 느낌이 오면 쓰레기 봉투를 들고 방구석을 다시 구석으로 밀어부치고 하나 하나 분류해 담아놓게 되었다.

그래서 내 방에 앉을 자리가 생겨났다는 이야기.

(지금 상황이 훨씬 나아진거라는게 방문했던 모든 이에게 충격이겠지만, 어쩌라고. ㅡ.ㅡa)

덧글

  • Mc뭉 2007/11/25 00:51 # 답글

    그렇죠...혼자 살때는 그런 생각도 해요...누가 나 몰래 들어와서 어질러 놓고 나가는 것이 틀림이 없다고...(`` )( ``)
  • 야미 2007/11/25 01:28 # 답글

    저도 제 방에 많은 의혹을 품고 산답니다(범인은 이방에!!)
    어지르는 녀석과 숨기는 녀석이 있다!! ㅡ"ㅡ
    일단 청소를 하면 의혹은 풀리지만 말입니다;;

  • ylangylang 2007/11/28 14:09 # 답글

    조금조금씩만 그때그때 치우면 되는데, 그게 너무너무나 힘들단 말이죠! 아니면 당장 '집안 어지르는 애'를 잡아내서 족쳐야 하는 건가.....두 사람의 대화 정말 푸하하하..
  • 2007/11/28 23:1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불량먹보 2007/11/29 17:58 # 답글

    자취는 원래 그런거에요... 깨끗한 자취는 녹색 과자처럼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입니다.
  • 나의르미 2008/02/19 12:26 # 답글

    Mc뭉님// 그럼요. 그런겁니다.

    야미님// 의혹이 말끔히 풀린 적이 없다는게...

    ylangylang님// N군 재미있어요.

    비공개님// 룸메이트가 아니었을까요?

    불량먹보님// 그,그렇군요. (안심)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