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하러 다녀오다 요즘이야기

어릴 적에는 집마다 집 특유의 냄새와 색깔이 있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나처럼 생기고 나같은 냄새가 나는 우리집이 제일 좋다고 생각했더랬다. 고등학교 때까지 우리집에 살다가, 스무살에 엄마가 이사가면서 내 방이 없고 모든게 낯선 곳에 처음 보는 가구들이 많이 끼어있는 집으로 간 바람에 엄마 침대에 앉아서 펑펑 울었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는 대학 졸업하고 일년이 지나서야 내 집이 생겼고, 이젠 엄마가 없어도 내 집이 내 집이라는 생각이 당연히 들게 되었다. 비록 일년에 ???만원을 가져가지만 난 내 집이 좋다(퍽!).

암튼, "르미 데리고 오려고." "차를 마시자." 이렇게 해서 비누비누비누치약치약치약 선물셋트를 들고 나는 길 위에 선 것이다. 한발짝, 가고 있다. 한발짝, 가고 있다. 으음. 사실 N군의 집은 우리집에서 북쪽으로 쭈욱 10분간 걸어가면 그 길 위에 있어서, 이게 너무 가깝단 말이다. 결국 추운 겨울날, 나는 약속시간 15분 전에 그 집 앞에 도착하고 말았다.

CGV를 한바퀴 돌고 전화. 집 앞에서 N군을 만났더니, "아버지는 '양복 입어야 되냐?'라고 물으셨어. 르미는 일찍왔네~" 라고 말한다. 오홋. 아버님 맘에 들어욧! 나만 초조해한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금새 신이나서 비누비누비누치약치약치약을 마구 돌리며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감 두개랑 떡을 나 혼자 다 먹은 것 밖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OTL.

암튼, 인사하러 다녀와서 기분이 좋아져서는, N군을 데리고 외할머니 댁으로 갔다. 외할머니 댁은 우리집에서 동쪽으로 길을 건너 쭈욱 가면 10분. 우리집이 우주의 중심이냐 뭐냐!

걸어가면서 "외할머니는 사춘기 소녀같은 감수성을 지닌 35년생 레이첼이죠. 가끔 이상한 음식을 만들어주시구요 저한테 살림 못한다고 구박하시면서 저처럼 살림을 못하세요. 그리고 일본을 너무너무 좋아하세요. 일본어 바이링구얼이기도 하구요." 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문을 열었는데, 정말로 내 말처럼 할머니가 전기 후라이팬을 꺼내시고는 뭔가 굽고 계셨다. 할머니는 N군을 보시더니, "반가워요.", "잘 부탁해요." 라고 하시고는 계속 음식을 만드셨다. 나를, 이렇게 헐값에, 음식을 붙여서 팔아넘기시는건가. OTL. 뭔가 쫌 질문을 하시거나 르미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야기해주시거나 그럼 안되는거? ;ㅁ;

할머니로부터 일본의 수퍼마켓을 보면 밥 할 게 없다는 이야기도 듣고, 하와이 사는 숙모할머니(엄마의 외숙모;;) 이야기도 듣고, 여행 이야기도 듣고, 일본에서 봤던 인상적인 결혼식 장면도 듣고, 전날 겪었던 고모와의 한판을 전하며 "으음 그렇군. 홧팅" 이런 격려(?)도 잘 듣고 돌아왔다.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삼겹살오코노미야키는, 놀랄만큼 맛있었다. 우리 같이 살던 2004년에 이걸 만들어주셨으면 내가 집나가지는 않았을텐데... 암튼 고마워요, 할머니. :)

이렇게 어제 하루를 보내고는, 뒹굴거리는 토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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