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게 해주는 것 학교에서

우리 학교는, 뭐랄까, 심한 욕설과 괴롭힘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다. 학생들 사이에서.

선생님이 싫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고, 나도 싫어했던 선생님들이 있고, 지금도 싫은 동료들이 있지만 이건 새로운 세상. 교실 바닥에 침을 뱉고 욕을 하고 출석을 부르면 반말로 대답하는 학생들이 반마다 많이 있는게 우리학교다. 매번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그러지 말자."라고 이야기해주는데에 진을 다 빼는게 나의 하루다. 고등학교는 정말 학교마다 다르다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된 지난 15개월. 그래서인지 분위기는, 일단 학생들을 데리고 있자.는 데에 많이 목표를 두는데, 그러다보니 자율적인 것 무엇 하나 그 場을 열어주기가 힘들다. 나 또한, 이 학생들에게 무언가 맡긴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이 가득한게 사실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나 또한 "내 힘으로 무언가 해보고 싶다."라고 매일 매일 생각하다보니 질러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토요일 자치시간에 10명이 "미처 아직 등교하지 못한" 가운데 - 그럼 남은건 10명인데, 그 중 3명은 전날 '단합'한 바람에 다른 장소에 혼나러 갔음 - 7명이 조촐하게 학급회의를 했다.

"학급회의 할거야."

칠판에 "지각했을 때의 벌칙"이라고 쓰고, 자유롭게 시간을 주었더니 정말 좋은 생각이 많이 나온다. 커텐 빨기, 선풍기 청소하기, 운동장에 나가 엉덩이로 이름쓰기, 여학생 학급에 가서 전화번호 따오기, 쓰레기통 비우기 등등. 아하. 커텐을 어찌 빨아야 하나, 선풍기 청소를 누굴 시켜야 하나 걱정했던 것이 말끔히 사라졌다. 녀석들은 모이면 천재이자 훌륭한 교사가 된다.

오늘은, 그 첫 시작으로 수업시간에 짬을 내어 - 학생들은 수업이 임박해서야 등교하기 때문에 아침 시간이라는 것이 거의 운영이 안된다 - 지각생들을 불러 선풍기 날개를 떼어 내라고 했다. 이 선풍기는 누구, 이 선풍기는 누구 라고 이름을 붙여주니 올라가서 떼어내느라 난리다. 그런데 잘 떼어지지 않는다.

어떡하지. 잘 안되고 있어. 라고 걱정하는 마음이 울컥 솟아오르는 그 때에, "내가 선풍기를 좀 알지."라고, 한 명이 볼펜을 들고 옆 책상에 올라가더니 선풍기를 분해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나 둘 도와주겠다며 애들이 다같이 선풍기에 매달리고, 나머지 담당 없는 선풍기는 내가 하겠다며 나서는 아이들도 생겼다. 둘씩 짝을 지어 수돗가에 날개를 씻으러 가는 모습이 좋아보인다.

영어 수업 한시간 정도 날려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나는 가끔은 내 전공을 포기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설이 난무한 아이들이지만 어른들 사이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매너를 지키면서 도와주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도움을 타인에게 줄 수 있는 아이들이다. "이건 D군이 닦은거, 이건 S군이 닦은거에요." 라고 했더니, "얘랑 얘도 같이 했어요!"라고 거드는 아이들. "나머지 학생들은 선풍기 틀 때마다 친구들이 닦아놓아서 틀 수 있다는걸 잊으면 안되요." 라고 했더니, 알겠단다.

나도 조금은 너희들을 알겠다. 라고 생각했다.


덧글

  • passion 2008/05/22 00:42 # 답글

    번호따오기가 벌칙이라니 재밌군요 ㅎㅎ
  • 바나 2008/05/22 03:49 # 답글

    매너를 지키면서 도와주지 않는 사람들 <- 아, 정말. 그래요, 어른들은 많죠. 저도 일단 숫자상으로는 일반적으로 어른이지만;;
    뭐ㅡ 매너도 안 지키고 도와주지도 않는 사람도 있지만요. -ㅂ-

    나의르미 님 글 읽을 때면 제가 애들을 싫어한다는 것에 대해서 좀 반성하게 됩니다;
  • greenmovie 2008/05/22 18:59 # 답글

    예쁜 아이들.. 그 예쁜 아이들을 더 예쁘게 만드느라 노력중인 르미.
  • 응아보이 2008/05/25 01:03 # 답글

    좋은 이야기...
    진하고 좋은 이야기라 더 좋아요.. ^-^

    좋은 점만 본다는 건 나의르미님의 장점입니다.

    이제는 조금 삐딱해진 나로서는 일단 패고 볼꺼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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