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결혼식. 요즘이야기

아빠의 초대로 참석한 결혼식. 여러번 전화를 주시는 통에 택시 안에서 민망해 혼났다. 조카의 결혼식에 딸을 데리고 온다는게 무지 좋으신가보다. 문득 중2때 아빠와 마지막으로 함께 서울의 한 결혼식에 갔던 기억이 났다. 그 옛날 비행기 안에서 돌아오면서, "르미도 체형관리 해라. 오늘 본 신부처럼 드레스가 터질 것 같은 모습은 부담스럽잖아."라고 말씀하시던 아빠가 기억나서 잠시 OTL하고...

1층에 도착했다고 전화드리니 혹시 2층에 있는 식장을 못찾을까봐 데리러 오시겠다고 난리였다는 주위 어른들의 제보. "나도 축의금 내야해?"라고 살짝 툴툴거리며 - 아빠가 같이 내주실 줄 알았..- 봉투에 이름을 써서 사촌이라지만 전혀 기억이 안나는 신랑에게 주었다. 그러고보니 축의금 내 본 경험이 별로 없는, 나는 참 초짜 어른이다.

간만에 만난 어머니는, "아빠가 네 얘기만 하셔. 가끔 만나드려."라고 하신다. "흠. 아빠도 나이드시는게로군요."라고 말씀드리니, 끄덕.하신다. 여전히 꼬맹이들과 엄청 잘 놀아주시고, 초 가부장적인 집안의 다른 어른들과 달리 자기 부인을 슬쩍 주방에서 빼돌리기도 잘하는, 성격 좋은 사람. "있을 때 잘하셨어야죠. 난 지금 다 커버렸는걸."이라고 야박하게 어머니께 말씀드려보지만, 한편으로 고마운 건 사실이다. 인생의 절반을 따로 살았어도 한 순간도 아빠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는건 부정할 수가 없다. 옆에 앉은, 계보상 손자가 되는 초등학생 아이랑 마치 부자처럼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아빠를 보며 어쩌면 아빠도 내가 어렸던 그 때를 무척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순간 나를 괴롭게 만드는, 가끔은 출근길에 버스에서 눈물을 훔치게 만드는 그리움이라든가 회한 같은 것이 어찌 나한테만 있겠어. 당신도 '인생을 살며' 동시에 '인생에 살아지고' 있는 사람. 인생의 매순간에 칼자루를 내가 쥐고 있지 않다는 것에 더이상 충격도 받지 못하는 당신도 나와 같은 한 사람의 어른.

외동딸로 커버린데다 일찍 독립해서 매우 '버릇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지만 덕분에 가족을 가족이 아닌 사람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문득 감사하다. 수많은 인생의 굴곡과 성격적 결점을 그나마 조금이라도 커버하는 나의 재산...이라고하면 과장일까. 엄마가 외로워하고 괴로워할 때에 딸이 아닌 개인으로 그 모습을 볼 수 있어 이해가 쉬웠고, 아빠가 퇴직 후 이런저런 사업과 모임으로 바쁜 것을 보며 "즐거우면 됐지~! 적자면 어때! 어머니한테 잘 해드려야겠네~"라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는 내가, 가끔은 좋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보람찬 일을 할까 하다가, 신랑(=시누이 아들)의 집에서 손님 치르며 일손을 도와야 하는 운명에 처한 어머니를 꼬드겨 일찍 집으로 가시도록 했다. "어머, 집에서 잔치를 하다니 이렇게 손이 많이 드는 일을... 시골은 시골이네요. 어머니, 아빠 스케쥴 바빠서 일찍 가야한다면서요. 저도 그 차로 갈거니까 같이 가서 한복 갈아입고 좀 쉬세요. 그래도 괜찮아요."라고 속닥속닥. 아빠는 다른 어른들 앞에서는 "여기서 일 도와주고 와."라고 말하시고는, 어머니의 핸드백을 들고 제일 먼저 나가셨다. 역시,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다정한 남자로구나, 아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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