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워라 학교에서

영문학과에 진학할 학생을 포함, 영어를 공부하겠다는 학생 세 명을 데리고 과외를 하고 있습니다. 빈 교실에서 넷이 앉아 과자를 까먹으며 중3 문법책을 풀죠. 평소 말수가 없고 급식도우미를 하며 같은 반 학생들을 '매일 겪었던' 애가 끝나가는 고교시절을 추억하다 문득, "그 애들도 남들을 배려하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았을까요?"라고 말합니다.

어느 학급에나 있음직한 민폐 그룹이 우리반에서도 일년간 대활약을 했거든요. 저는 가끔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라 정도의 훈화를 하였구요. "난 내 책상에 쓰레기를 올려놨을 때 그냥 짜증을 냈어요", "난 급식할 때 하나씩 줘야하는거 친구가 결석했다고 두개 달라고 할 때 좀 그랬어요." 학생의 성토가 이어지고 듣고 있던 옆반의 괄괄한 학생이 한마디 합니다. "왜 그걸 그냥 둬? 난 내 물 가져가서 빈통으로 가져왔을 때 딱 두 번 참고 그 다음에는 뭐라고 했어. '그까짓 물' 이라고 하길래, '이까짓 물 네가 그럼 떠다 먹지?' 라고 했지."

학생들의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사소한 일들로 말다툼이 있었던 그 반은, 싸우고 난 뒤 더 친해지는 드라마같은 일은 없었지만 서로 조심할건 조심하면서 일년을 보낼 수 있었고, 직접 이야기하기보다 그 자리를 피한 뒤 친한 친구들과 서로 위로하던 우리반은 그룹별로 나뉘어 서로 자기 할 일만 하고 있었던 것 같다네요.

자신이 담임하는 학급 학생들이 화목하게 지내길 바라지 않는 선생님은 없겠지요. 일단 일년간의 고생을 위로하고 한가지 부탁을 해주었습니다. 싸우라고. 어이없는 실례를 하는 학생이 있어 피해를 보았다면 가서 그 아이에게 그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하라고. 자신이 기분 나쁘다는 것을 보여주라고. 그것이 상대를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이고 자신을 존중하는 행동이니까.

싸워라. 그것이 그 그룹이 성숙해가는 과정이다, 라고. 집단도 수명이 있고 주기가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구성원간의 갈등과 그 해결이다. 인사 정도의 좋은 말들만 오가는 것은 응집력이 약한 집단의 특징이니 그 집단을 바꾸고 싶다면 문제를 이야기해라.

내가 싸우라고 이야기하니 애들은 의외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난 진심인걸.

열아홉인 너희들에게 내가 조종례 시간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피해를 본 네가 이야기하는게 더 변화가 빨랐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네 책임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앞으로는 그렇게 하라는 이야기다. 넌 소중하니까. 대학에 가도, 직장에 가도 그런 사람은 있다. 그런 사람과 함께 살 수도 있다. 내 자식이 그럴 수도 있다. 그럴 땐, 말해야한다.

며칠동안 여자반 담임들끼리 대화한 결과 정말 올 한해는 상쾌하지 못한 마무리라는 결론입니다. 어느 반에나 성실하고 조용한 학생들은 시끄럽고 공부 안하는 학생을 경멸하고, 다른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먼지귀신처럼 몰려다니며 교실을 쓰레기나 소음이나 화장품으로 물들이고 있거든요. 정숙한 자습시간 운영을 위해 한 반에 10명이 남아도 늘 자리를 지켰던 담임샘에게 마지막 달에 "그 애들 왜 야자에서 안 뺐어요? 피해만 주잖아요."라는 항의가 적힌 설문지를 내민 아이들. 

힘들었구나. 고맙고 미안하다. 하지만 저 아이들도 소중한 고교시절을 보내고 있는 너희와 똑같은 사람이다, 라고 말할 기회가 이제는 별로 없습니다. "학교 뭐하러 와야 해요? 지금부터 결석해도 졸업하는데?"라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이제 진짜로 학교에서의 시간을 재미있게 보내보라는 이야기를 할 기회도 별로 없습니다. 

이것이 12월의 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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