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사이, 나와 그 사람의 어머니에 대하여 옛날이야기

추석을 맞아 그의 부모님에 대해 생각해본다.

엄마는 내가 나인 것이 행운이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이야기가 잘 통하고, 친구가 되어주기 때문이란다. 친구라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엄마와 부모자식이 아니라 옆집 손아래 이웃 같은 대화를 한다. 떨어져 있으면 내 부모 내 자식으로 그리워하지만, 만나면 우리는 친구처럼 공감한다. 나에게도 행운이다.

관련 글: http://myrmy.egloos.com/2738675 (2006.10.06)

엄마에게 그렇듯, 나는 시어머니에 대해서도 그분의 삶이 궁금했고 생각이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질문이 많았다. 결혼 초에 5분 거리에 살았을 때는 어머니의 기대나 요구사항이 많으셨고 그걸 다 해드리지 못해서 갈등했지만, 나는 노력을 다 하고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못한다고 처음부터 분명히 내 상황을 말씀드렸다. 여러 가지 일을 겪고 나서 어머니는 차차 내가 하는 일들이 진짜로 나의 최선이라는 것을 알아주셨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 사람', 그러니까, '사람', 며느리나 시어머니가 아닌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 같다. 취향이 있고 성격이 있고 개성이 있는 사람이다. 그것이 곁에서 산 2년의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이사를 해서 우리는 바다 건너에 살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어찌나 불편한지. 가끔 뜬금없이 찾아가서 밥을 같이 먹으며 미리 이야기해 놓으면 될 집안일들이, 거리가 멀어지니 전부 '사건'이 되었다. 옆에 살 때는 퇴근 후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던 어버이날이, 떨어져 사니 이른 아침에 "전화를 먼저 걸지 않아 서운하다"는 말씀을 듣게 되는 날로 변했다. 거리가 멀어져서 우리 관계가 후퇴했고 그렇다면 다시 채워가는 수밖에, 라고 생각했던 씁쓸하고도 애틋한 시간이 흘렀다.

오늘, 퇴근 후 잠든 남편을 바라보다 문득, 이 사람이 아주 작았을 때 이 사람을 업고 있었을 어머니를 떠올려보았다. 지금 내 나이의 어머니는 그 아이를 업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아이가 첫걸음을 내디뎠을 때 손뼉을 쳤겠지.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감격했을 테고, 대학에 들어가며 집을 떠났을 때는 내 어머니가 그랬듯이 자신이 모르는 세상으로 걸어 들어가는 자식을 보며 기쁘면서도 초조했을 것이다. 나에게 내 어머니의 인생과 인격이 묻어있듯, 이 사람에게도 어머니가 묻어있다. 그래서 나는, 논쟁이든 싸움이든 아니면 동업이든 그분과 무엇을 하건 우선은 고개를 숙여 내가 보지 못했고 알지 못하지만 실재했던 그 시간에 감사하고 나서 뭐든 하기로 마음먹었다.

글을 쓰는 동안 날이 바뀌어 4주년 결혼기념일이 지나고 나는 오늘부터 결혼 5년차가 되었다. 

덧글

  • 2012/10/01 23:4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0/02 21:5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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