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점정리 마니또 학교에서

봉사활동 교육으로 계획되어 있는 수요일 오후의 두 시간. 영상을 본 후 봉사활동 계획서 및 확인서에 대해 안내를 하면 되는 것인데 이미 학교를 11년 하고도 한 달을 다닌 학생들에게는 새로울 것이 없지요. 교무수첩을 뒤적거리다가 쓰고 난 명렬표가 있어서 가위로 이름 따라 잘랐습니다. 

나는 이걸 왜 자르고 있는 건가. 첫 만남도 아니고 고3이. 

조금 더 열심히 생각해봅니다. 시험이 있는 달이니 시험에 나올 만한 것을 적어서 보내라고 해야겠구나.

학생들은 제가 꼼지락거리는 것을 보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 여러분의 이름이 있으니 하나씩 뽑을 거에요."

"우아~! 마니또다~!"
"뭘 줘요?"

"중간고사 공부하다가 중요해 보이는 것을 A4 절반 정도의 분량으로 적어서 주세요."

"익명이에요? 비밀?"

"(아 그런 거 난 별로 중요하지 않은데...) 비밀로 하자! 나중에 알게 되면 놀라겠지?(급 생글생글)"


일주일의 시간을 주었습니다. 개학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여학생의 얼굴을 모르는 남학생이 있어서 "이게 누구일까요...?"라는 질문을 두 명에게 받았고, 마니또의 선택과목이 일본어인지 중국어인지 물어보는 학생도 있었어요. 결석한 학생에게 그 날 배운 영어지문 해석을 주겠다는 기특한 학생도 있었습니다.

며칠 후 아침, 한 남학생이 서랍에서 종이 세 장을 꺼내더니 소리를 지릅니다. 서랍에 마니또가 선물한 생명과학Ⅱ 요약정리가 들어있었어요. 자기가 받은 요점정리가 그림도 예쁘고 내용도 충실하다고 학생은 자랑을 하고, 나머지 아이들은 다들 부럽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날 적응활동을 정할 수 있었죠. 이름 하여 "내가 받은 마니또 요점정리 자랑하기"

1. 전화기를 꺼낸다.
2. 마니또에게 받은 요점정리를 꺼낸다.
3. 찍는다.
4. 우수 작품은 밴드에 올린다. 우수 작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는 담임샘의 카톡으로 보낸다.

4번처럼 두 군데에서 받는 이유는, 다 함께 공유하는 시간에 좋은 작품들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밴드의 사진첩을 이용해서 교실 TV로 하나하나 함께 볼 거거든요. 사진을 올린 학생은 자기가 올린 것이 크게 나오니 기분이 좋고, 그 요점정리를 보낸 학생은, 자신의 작품이 우수 작품이어서 뿌듯합니다. 잠시 보실까요?


학생들에게 많이 배웁니다. 이렇게 나도 열심히 해야지... 

다음 진로 시간 활동은 마니또에 대한 정리의 시간으로 삼기로 하고 설문지를 만들었습니다.

1. 누구에게 주었나요?
2. 과목은?
3. 마니또에게 요점정리를 받았나요?
4. 과목은?
5. 느낀 점을 한 줄 적어주세요.

사실 5번이 궁금하지만, 그것만 물어보면 대답하기 힘들지요. 1, 2, 3, 4번을 적으면서 학생들은 생각할 시간을 가지고 5번을 충실히 적게 됩니다. 소감은 대부분 긍정적이었어요. 성의가 없어 보였다는 소수의 답변이 있었고, 요점정리를 받지 못했다는 두 명의 절규도 있었습니다. 1번 질문을 통해 누가 누구의 마니또였는지 알 수 있으므로 범인을 색출하고, 여기서 얻은 인상적이거나 감동적인 피드백을 종례신문 한 코너에 넣었습니다. 저 혼자 만들어서 늘 콘텐츠가 빈약한 종례신문에 단비 같은 기삿거리... 올레~!

받지 못한 이유를 찾아보니, 한 명은 '마니또가 마니또를 수행하지 않아서'이고, 나머지 한 명은 '담임의 실수로 한 명에게 두 명의 마니또가 선정되어서'... 또르르...

청소시간에 마니또를 수행하지 않은 학생을 불러서, '너만 안했는데 종례시간에 내가 공개해버릴까, 아니면 네가 지금 가서 섭섭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할래?' 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마니또가 이벤트이기 때문에 사실 이걸 하지 않았다고 큰 잘못은 아니에요. 하지만 자기가 하기로 한 일이 재미가 없거나 어려우면 하지 않아버리는 아이들이 많기에, 그 수습법을 알려주고 싶었달까요.

그리고 그 날 저는, 담임의 실수로 마니또 없이 외로운 일주일을 보낸 학생에게 나의 실수에 대해 사과하고 내가 마니또를 하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다른 학생에게 일본어 교과서를 빌려와 자습시간 내내 본문에 나온 단어를 정리해서 녀석의 서랍에 넣고 퇴근했어요. "안녕? 나는 너의 마니또야. 영어를 적어주고 싶었는데 막상 적기 시작하니까 아는 게 너무 많아서 한 줄에 대한 설명이 한 장이 넘어가길래 일본어를 골랐어." 로 시작합니다. :)

요약.
1. 마니또를 뽑고 방법을 설명한다. [창체 한 시간 + 즐거움]
2. 마니또를 수행하는지 중간중간 살핀다. (마니또를 핑계로 학생들과 상담)
3. 자기가 받은 마니또를 자랑하게 하며 결과물을 확인한다. [창체 한 시간 + 밴드 활성화 + 자료수집]
3. 마니또 활동에 대해 설문하고 답한 내용을 공유한다. [창체 한 시간 + 칭찬거리]


덧글

댓글 입력 영역